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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 chapter별 요약


1. 곤경에 처한 경제학자들


Dismal : 미국·영국 [|dɪzməl]  1. 음울한, 울적하게 하는   2. 솜씨 없는, 질 낮은

보통 경제학을 Dismal Science라 불린다. 사실 그도 그럴 것이 일반 사람들이 느끼기에는 경제에 관한 좋은 이야기보다는 IMF, 금융위기, 폭발적으로 상승하는 물가, 기름 값, 전세 대란 등 점점 살기 힘들어 진다는 소식만 접하면서 살아오고 있는 착각을 할 정도이다. 급속한 세계화로 인해 작은 나비 날개짓조차도 크게 진동 된다고 느끼듯이 사람들은 나빠지는 것에 더 인식을 하게 된다. 따라서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좋지 않은 현상에 대해 분석하고 발표할 수밖에 없고 전달할 뿐인데도 사람들은 그 나쁜 소식에 대해서 경제학자들을 탓한다. 제 1장은 이러한 이야기를 담고 있다. 이 세상을 모형화하고 간소화하여 분석해야하기 때문에 우리가 많이 들어본 경제학자들은 대부분 수학에 능통했고 철학에 관심이 많았으며 과학, 통계, 정치 등 다양한 분야의 지식을 섭렵하는 거의 천재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었다. 경제학자들은 세상을 걱정하고 사람들이 더 풍요롭게 살기 위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고민하고 분석해왔다. 그러한 대가가 dismal science라는 것이 안타깝기는 하지만 그들이 불명예를 안은 채 행했던 노력과 희생이 지금 시대의 선진화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데 의심할 이유가 없다. 경제학에 대해서 실제 세상과 다르다 혹은 사람을 100% 이해하지 못한다는 오명을 갖고 있는 학문이라 오해할 수도 있지만 그간 경제학이 발달해온 과정을 살펴보면서 또 그 안에 갖고 있는 기본 원리들을 바탕으로 세상을 바라볼 수 있다면 가치 있는 학문이 될 거 같다.


2. 경제학의 창시자, 애덤 스미스의 재림(1723-1790)


 경제학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는 애덤 스미스의 삶은 비교적 무난한 편이다. 물론 나는 꿈도 못 꾸겠지만 애덤 스미스는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다고 한다. 하지만 그는 특이한 생김새에 정신 못 차리고 하는 많은 행동들, 심지어 심각한 몽유병까지 가지고 있는 우리가 생각하는 반듯한 이미지의 사람은 아니었다. 스스로조차도 “나는 내 저서를 통해서만 아름다워질 수 있지.”라고 인정할 정도였다. 그는 사실 경제학자로 유명해 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흄의 철학적 저서들과 캠퍼스의 과격론자라고 불리는 스승 허치슨의 영향을 받았고 철학자로서 발간한 저서가 유명세를 타면서 철학자로 먼저 알려졌으며 또한 강단에서 허치슨을 이어 철학을 강의함으로써 인간의 내면적 측면에 대한 깊은 고찰을 한 인물이었다. 그는 공명정대한 관찰자라는 존재를 의식하여 모든 인간들이 양심에 어긋나는 행동은 하지 않을 거라고 믿었으며 그 또한 그러지 않으려 노력하였다. 당시는 산업 발전이 급속도로 진행되는 시기였고 많은 사람들이 경제활동에 대해 관심을 갖고 있을 때였다. 아담스미스는 이러한 시대적 상황에서 자신의 철학적 관점을 중심으로 중상주의자와 중농주의자의 사상들을 겪으며 이들과는 전혀 다른 개념의 자신만의 경제학을 정립하였다. 이러한 발상으로 고민한 결과물이 경제학사에 길이 남을 위대한 책인 국부론이었다. 애덤 스미스와 국부론은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들도 거의 알 정도로 유명하다. 나도 이과생임에도 불구하고 중학교 때부터 많이 들어온 이름이니깐. 국부론은 중립적 위치에서 경제를 독립적으로 분석한 최초의 책이고, 수많은 정치가들의 혹은 기업들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근거가 되었으며, 경제학도는 물론 지식을 탐구하는 학생들이 반드시 읽어야 바이블로 자리잡아왔다. 국부론에서는 나약한 인간들의 공통된 욕구를 중심으로 (이때의 욕구는, 타인보다 더 잘 살고 싶어 하고 또 나의 것을 타인의 것과 바꾸고 싶어 하는 것) 그들이 공익을 추구하려는 의도도 없고 자신이 공익에 얼마나 이바지하는지 조차 모르는 채 하는 행동들이 오히려 사회에 부수적 결실을 가져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주장을 펼친다. 이때 그들의 욕구 추구 행위는 단순하게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에 의해 정리가 된다고 한다. 이때의 보이지 않는 손은 자유방임시장 체제(free market)를 의미한다. 이러한 자유 시장 체제를 위해서는 정부의 개입이 최소화되어야하고 정부는 단지 국방이나, 정의, 공공재의 문제에만 관여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음으로 국부론에서 뺄 수 없는 이야기 중 하나가 바로 핀 공장을 일화로 내세운 분업체제의 효과이다. 분업을 통해 노동자는 맡은 일에 숙달되고 작업 전환 시 소요되는 시간이 없어지며 전문화로 인한 능률이 상승할 수 있다. 즉 분업을 통해 생산성이 급상승 할 수 있는 것이다. 스미스는 이에 그치지 않았다. 분업은 물론 자유무역까지 이루어져야 진정으로 국가에 부가 쌓인다고 하였다. 당시에는 해운업이나 항해술이 발달하여 무역에 대한 기술적 어려움이 줄어드는 시기였다. 따라서 스미스는 무역을 통해 희소자원을 더욱 효율적으로 사용하여 절대 우위가 있는 물건을 생산하고 더 싼 국가의 물건을 수입해야한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관점에서 독점과 보호를 호소하는 상인들을 비판하였고 자유무역을 추구하였다. 


 마지막으로 스미스는 하나의 완제품을 위한 과정들의 노동자들은 오로지 자신의 대가만을 추구하면 된다고 하였다. 위에서 언급한 내용과 비슷한데, 노동자들은 공익이나 미래를 고민할 필요 없이 자신의 일만 충실하면 된다는 의미다. 이 의견은 하이에크, 프리드먼을 통해 발전되었고 그들은 중앙경제학자란 의미 없는 것이라며 샤워실의 바보와 같은 공감이 가는 일화를 만들어내었다. 스미스는 경제가 폭발적으로 성장하고 사회적 변동이 심하며 지식의 대 혁변이 일어나 사람들이 당혹해할 때 보이지 않는 손처럼 그들을 안내하는 신호등의 역할을 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단순히 좋고 나쁜 것만을 추려낸 것이 아니라 인간을 생각하고 서민을 배려한 지식을 추구하였다. 따라서 부르주아가 부를 독식하는 것에 대해 비판했고, harmony를 꿈꿨다. 이번 장에서 특히 느낀 점은 일단 너무나 많이 들은 이야기임에도 불구하고 스미스의 철학적 사상과 인간성을 더욱 잘 알게 되어서 뜻 깊었다. 우리는 이기적인 개인이 자신의 행위만을 추구할 때 사회적 공익이 달성 된다.라고 공식처럼 암기하였는데 이때 ‘이기적인’이라는 단어가 단어의 특성상 조금 나쁜 이미지로 전달이 되었는데 전체적인 이야기를 알고 나니까 단지 ‘의도하지 않은’의 뉘앙스가 더 강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3. 암울한 예언가, 맬서스 (1766-1834)


맬서스에 대해서는 옛날에 잠깐 들은 기억이 있었다. 간단하게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반해 식량은 산술급수적으로 증가한다는 이론 정도로 이해하고 있었다. 이 책을 통해서 그 이면에 자세한 생각들에 대해서 알 수 있었다. 일단 책에서 맬서스를 훤칠한 외모에 유머 감각이 있고 유쾌한 성격을 지닌 사람이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애덤 스미스와 같이 철학에 심취하였고 수학, 언어에 능통하였으나 언청이었다고 한다. 그를 논란의 중심으로 만든 논문인 “인구론”은 조금은 황당한 계기로 출판되었다. 그는 당시의 무척이나 낙천적이었던 콩도르세나 고드윈같은 인구증가 예찬론이나 인간은 완전하다, 이제 유토피아만이 남았다라는 낙천주의에 화가 났고 이에 대해 반론하기 위해 인구론을 출판하였다. 그는 앞으로 식량은 등비급수로 증가하고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여 식량이 극도로 부족하게 되어 결국 종말이 올 것이라고 예견했다. 단순히 종말이 아니라 전염병에, 전쟁에, 줄줄이 안 좋은 사건만 일어난다고 예언했다. 여기서 종말을 막기 위해서는 양성제어와 예방성 제어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양성제어는 기아나 자연 재해와 같은 사건을 통해 인구가 제어되는 것이고 예방성 제어는 말 그대로 애를 못 낳게 하는 방법이었다. 

 지금의 시대의 관점에서 살펴보면 좀 황당하면서도 웃기다. 어쩌면 말도 되지 않는 이상한 이론을 가지고 혼자 걱정하고 슬퍼했다는 사실은 조금 안타깝기까지 하다. 이러한 이론을 바탕으로 그는 빈민구제에 대한 정책을 반대했으나 이 모든 것이 불행이 시작되면 빈민층이 가장 먼저 타격을 입을 것이라는 걱정에서 온 것이었다. 맬서스는 초판이 과학적 근거가 부족한 비관주의라는 판단하에 아프리카, 터키, 티베트 등 다양한 경험론적 자료를 보강하여 개정판을 출판하였다. 이때는 도덕적 자제를 발휘하여 출산율이 낮아질 수도 있다고 인정하였고 또 빈민구제에 대해서도 점진적 폐지로 완곡하게 변화하였다. 다행스럽게도 맬서스의 인구론이 개정판을 거듭할수록 나름의 인정을 받았다고 한다. 결국 지금에 와서 평가한다면 맬서스의 이론은 미국 인구자료에 대한 잘못된 분석, 농기구나 품종 개량 등 농업혁신에 대한 간과, 산업 혁명으로 인한 기계 발전 예측 못함, 의료기술이나 약(특히 피임약)에 대한 발전 예측 못함, 인구의 4단계 변천(이 4단계로 인한 적절한 인구 수 유지) 등 많은 오해와 예측 실패로 철저하게 예언이 빗나가 버렸다. 그러나 나름의 의의는 반드시 있다고 생각한다. 책에서도 나왔듯이 과거의 자료에 근거해서 미래에 대한 결론을 내리지 말라는 교훈과 그리고 무슨 일이든 부정적인 결과를 미리 예상하고 이를 예방하기 위해 노력하자는 교훈이다. (사실 얻어 걸린 건 아닌지.)  



4. 자유무역의 화신, 데이비드 리카도 (1772-1823)


 리카도에 대해서 맨 처음들은 것은 글로벌 무역의 이해라는 과목에서이다. 단순하게 보호무역을 반대하는 사람정도로 이해했었는데 이 책을 통해서 보다 자세한 설명과 더불어 그 사람의 생애까지 알게 되서 더 이해가 잘되었던 것 같다. 정통 고전학파의 중심인 데이비드 리카도의 이야기는 재미있으면서도 상당히 어려운 내용을 많이 담고 있다. 비교우위론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리카도에 대한 사전 지식을 먼저 쌓는다면 첫째, 그는 대학을 가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엄청나게 총명한 머리로 인해 지식인으로 인정을 받았다. 이 책의 주인공중에 유일하게 대학 문턱을 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한다. 14살 아버지를 따라 주식시장에 들어가 엄청난 부를 획득하였다는 것에서 귀가 솔깃했다. 역시 실무도 중요하다는걸 다시한번 깨달았다. 이렇듯이 리카도는 경제학을 정식으로 배우지 않았지만 27살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을 읽고 감동을 받아 경제학에 심취하게 된다. 그는 멜서스와 절친한 친구이면서 동시에 멜서스의 의견과 거의 반대 의견을 가지고 있었기에 둘의 논쟁이 번번이 일어났다. 그러나 리카도는 멜서스를 진심으로 좋아했고 심지어 죽기 전에 유산까지 물려주었다. 책에 보면 리카도가 “내 가족을 제회하고 일생을 통해 내가 그토록 사랑했던 인간은 없었다.“라고 말할 정도였다고 한다. 자신이 진심으로 좋아하는 친구와 격정적으로 논쟁을 할 수 있었던 부분이 정말 멋있는 것 같다. 


 리카도의 대표적인 이론으로 비교우위론을 들 수 있다. 비교우위는 기회비용을 기준으로 특화를 통해 덜 희생하는 것을 추구하는 이론이다. 즉 기회비용이 낮은 물품을 생산하여 서로 교역하면 더 큰 생산량을 가져올 수 있다는 의미이다. 이러한 관점에서 리카도는 자유무역을 강력히 주장하였는데 이를 통해 세계가 분업화되어야 한다고 하였다. 이 책이 1994년도에 쓰인 것이라 아직 유럽이 완전하게 통합된 것에 대해 모르고 있다. 여기에 보면 1992년까지 모든 유럽 내 장벽을 없애기로 한 사실이 확정된다면 리카도는 완전히 승리할 것이고 그렇지 않으면 부분적 승리만 거둘 것이다. 라고 쓰여 있다. 신기하게도 지금은 유럽 내에는 물론 전 세계가 통합의 물결로 물씬거리고 있으니까 말이다. 우리나라도 FTA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으니 말이다. 리카도는 이 자유 무역을 통해서 두 나라의 이익은 분명히 가져올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 사회에 적용해보면 FTA가지고 무조건 두 나라에 이윤을 가져온다고 할 수 없기 때문에 조금 더 분석적으로 대책을 고민해봐야 된다고 생각한다.


 리카도를 이야기할 때 멜서스와의 논쟁을 빼놓을 수 없는데 그 둘은 절친한 친구 사이임에도 불구하고 무역에 대해 상반된 의견을 보였다. 멜서스는 인류를 연명시키기 위해 식량은 보호해야한다고 주장하였고 리카도는 무역을 통해 가격을 하락시키는 것이 살 길이라고 하였다. 지금에서 보면 이 충돌이 아직까지 이어지는 듯하다. 난 리카도가 많이 부러웠다. 배우지 않아도 돈을 그렇게나 많이 번 것도 모자라서 호탕하고 자신감 있는 태도로 많은 유명 인사들과의 논쟁을 즐겼다고 한다. 일생토록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존경했고 또 200년이 넘도록 경제학도가 되기 전에 사회과목을 배우는 모든 학생들이 비교우위를 배우는 영광을 누리며 살고 있다. 부럽다.

 



5. 경제학계의 풍운아, 존 스튜어트 밀(1806-1873)


 존 스튜어트 밀은 신동이었다. 경제학이란 학문이 모든 학문에 대한 전반적인 이해가 수반되어야 되기 때문일까?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천재들인 것 같다. 스튜어트도 마찬가지. 아버지 제임스는 존이 3살이 되던 해에 희랍어를 가르치고 이후 철학, 수학, 라틴어 등 수많은 지식의 습득을 강요하였다. 매일 숲 속을 산책하며 말로서 경제학을 가르치고 또 다음날 완벽한 보고서를 제출했어야만 했다는 일화는 조금은 놀라울 정도이다. 하지만 이게 조금 가혹했던 것일까? 밀은 마음 깊은 곳에서부터 아버지의 군림으로부터 벗어나고 싶어 했고 아버지가 돌아가심으로써 비로소 해방되었다 느꼈던 것 같다. 어린 나이에 너무 많은 것을 알아버린 밀이 깊은 고뇌에 빠져 철학의 매력으로 들어간 것은 어쩌면 당연한 순리인 것 같다. 그는 벤담의 공리주의에 깊게 매료되었고 정신을 사로잡혔다. 그는 정신적, 감성적 가치를 높게 샀고 이를 통해 국정을 해야만 한다고 주장하였다. 따라서 부의 형평성, 교육, 여성의 권리를 강력히 주장하였고 공급보다는 분배적 측면에 더욱 신경을 썼다. 조세 부분에서는 노동에 대한 동기를 억제시키는 것을 막기 위해 누진세보다는 비례세를 주장하였고 그 안에서 가난한 사람들에게는 세금을 면제시키자고 하였다. 또한 상속세를 통해 부유층을 압박했고 사치품에는 확실하게 세금을 매겨야 한다고 하였다. 어쩌면 지금 다수의 국민들이 원하는 정책인데 이때부터 시작된 것이 아닌가 싶다.


 밀은 세금에 대해 상당히 확고한 가치관의 정립을 한 것 같다. 그만큼 당시에는 세금의 힘이 컸다는 의미라고 생각된다. 밀이 결과의 균등보다 기회의 균등를 강조해왔던 점을 보면서, 지금 세상이 많이 떠올랐다. 많은 대학생들이 기회의 균등을 외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역사는 반복되는 건가?

 


6. 비운의 혁명가이자 경제학계의 이단아. 카를 마르크스(1818-1883)


사실 마르크스에 대한 이미지는 별로였다. 대학 신입 시절 때 누군가 마르크스에 대해서 공부하자고 나한테 접근한 사람이 있었는데. 뭔가 종교에 심취한 것 같은 무서운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어쩌면 나에게 익숙한 마르크스다. 자유 시장을 외치는 많은 경제학자들 사이에서 홀로 다른 주장을 펼치는 경제학자. 이 책을 보다보면 “아이러니하게도”라는 표현이 무지 많이 나오는데 마르크스 편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것 같다. 제 6장을 읽으면서 많은 경제학자들이 자신의 의도와 다르게 세상이 돌아가는 것에 속상해 했을 거라 생각했지만, 마르크스가 제일로 분통해 했을 것 같다. 그의 사상이 스탈린, 레닌, 북한 등 독재정치, 나아가 극악무도한 학살 등에 인용되었고 이로 인해 몇몇 사람들이 혹은 얕은 지식을 갖고 있는 나 같은 경우에도 독재와 마르크스가 같은 용어라고 생각하며 마르크스는 나쁜 사람인 것 같다고 많이 느꼈다. 


 어린 시절의 마르크스부터 살펴보면 그는 나름 중상류 이상의 집안에서 태어나 유복한 삶을 살았다. 그러나 심각한 쇼핑 중독으로 있는 재산을 다 탕진해버리고 어린 자식 3명을 안타깝게 보내야만 했다. 아무튼 그는 법률학을 전공하였는데 정식적으로 법에 관련된 일이라고는 사고만 치다가 대학 교도소 같은 곳에 감금된 것 밖에 없다고 한다. 또 그는 젊은 시절 신문을 편집한 경험이 있으나 높은 배짱으로 인해 잘린다. 마르크스는 자신들이 신이라고 일컫는 젊은 자본가 자녀들과 어울리고 특히 프리드리히 엥겔스라는 사람과 접하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또 헤겔의 철학을 어느 부분은 수용하고 또 어느 부분은 비판하며 능동적으로 받아들였는데 특히 변증법에 대한 부분의 영향을 크게 받았고, 이후 자신의 이론을 위한 초석으로 쌓아 변증법적 유물론으로 융합시킨다. 마르크스는 역사의 단계를 노예제도-봉건제도-자본주의제도-사회주의제도 마지막으로 공산주의제도로 정리하였으며 이는 생산관계(생산수단)에 의한 것이라고 하였다. 지배계급은 상부구조라는 정신적, 종교적, 법, 문화 등의 수단을 통해 자신들이 기득권인 이 체제를 유지시키려 하고 이러한 착취 방법에 따라 역사가 변화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피착취계급은 지배를 당할까? 그들은 생산수단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마르크스는 이러한 상부구조를 신랄하게 비판했으며 “공산당 선언”을 통해 노동자들에게 더 이상 착취당하는 것을 참고 있지만 말라며 독려했다. 그래서인지 나는 가끔 노동조합이 맹렬히 투쟁하는 것을 보면서 마르크스를 떠올리곤 한다. 아무튼 마르크스는 자본주의는 곧 붕괴할 것이고 몰락할 것이라고 하며 자본주의라는 괴물이 노동자들을 압박해온 것을 깨달은 노동자들 즉 프롤레타리어의 혁명이 일어날 거라고 생각했다. 공산혁명이 끝난 이후에도 물론 노동자들은 자신들의 노력만큼 대가를 받기는 힘들겠지만 적어도 그 잉여가치들이 자본가들이 독식하지는 못할 것이라고 하였다. 


 이 책의 저자도 웃긴 것이 마르크스가 말하는 공산주의가 정확하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한다. 마르크스에 대한 안 좋은 이미지가 많지만 어쩌면 그는 노동자들이 자본가들에게 착취당하는 것에 분노하고 이를 개선하기 위해 노력한 계몽가일지도 모르는데 말이다. 이러한 노력이 완전히 반대로 이용되어 심지어 수많은 인명피해를 가져온 사건들의 배경에 자리 잡았다는 사실이 아이러니하다. 아무튼 그는 많은 경제학자들의 혹평의 중심으로 굳건히 자리 잡은 인물이 되었지만 나는 적어도 그의 비주류적인 생각이 다른 경제학자들에게 경계심을 주고 또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올바른 기준을 세울 수 있게끔 도와준다고 생각한다. 반대가 끌리는 이유라는 노래도 있듯이. 



7. 앨프리드 마셜의 한계적 사고(1842-1924)


나는 수학을 좋아했다. 그래서 이과에 진학했고 공대에 진학했다. 경제학은 문과의 과목이라 여겼는데 미적을 배운다는 사실을 알고 신기했었다. 게다가 그 미적이 바로 이 분 때문에 배운다고 친구한테 들었던 기억이 떠오른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수학에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수학을 무지무지 못했던 아버지의 눈을 피해 몰래 수학책을 보며 흐뭇한 미소를 지은 소년이 바로 앨프리드 마셜이다. 또한 과거에는 경제학이 철학, 정치, 역사, 도덕에 결합되어 주가 아닌 약간 부의 느낌으로 받아들여졌다면 마셜을 기준으로 완전한 독립을 하였다고 볼 수 있다. 마셜이 경제학을 의학, 법학, 신학 이후의 네 번째 중요한 학문으로 삼아준 덕분에 경제학의 위상이 한층 올라갈 수 있었다는 생각이 든다. 마셜은 수학적 능력을 이용하여 경제학에서 가장 기초가 되는 “한계주의”를 정립했음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수학 공식, 기호들을 사용하여 경제학을 설명하는 것을 좋아하지는 않았다. 따라서 우아한 과학적, 수학적 모형은 과학의 장난감뿐이라며 자신의 저서에서 수학적 기호, 공식은 아주 작은 각주로만 표현을 하였다. 참 신기했다. 아무튼 마셜이 매우 쉽게 써내려간 경제원론은 수많은 경제학도들의 좋은 교과서가 되었고 지금까지도 많은 학생들이 보며 공부하고 있다. 마셜은 고정요소를 기준으로 경제를 단기와 장기로 구분하여 분석하였고 장기에는 가변요소의 투입은 가능하지만 고정 요소의 변화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반대로 장기에는 고정요소를 변동할 수 있는 시간이 된다고 하였다. 이러한 고정요소, 가변요소의 개념을 바탕으로 그는 편미분 개념을 이용하여 체증, 체감의 법칙을 도출해내었다. 균형을 중시했던 그의 방식은 이후 경제학의 모든 모델의 기본적 틀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마셜은 또한 사회적 잉여가치의 개념을 정립하였고 공교육과 부의 분배에 대하여도 많은 고민을 하였다. 


적어도 난 마셜에게서 새로운 관점으로 경제학을 그려냈다는 것에서 박수를 받아야 된다고 생각한다. 어떻게 보면 조금 더 객관적으로 볼 수 있게끔 수학이라는 언어를 사용했으니 말이다.



8. 자신이 친 제도의 그물에 걸려든 베블런과 갤브레이스(1857-1929)


제도학파(institutionalist)란 지대, 이윤, 노동비용 등과 같은 일반적 경제학의 범주에서 탈피하여 사회의 법, 기풍, 제도와 같은 것에 관심의 초점을 맞춘 학파이다. 이러한 제도학파 사이에도 구와 신이 존재하는데 구 제도학파는 마셜의 한계주의를 완전히 무시하고 균형은 한낱 꿈일 뿐 세상은 계속해서 변화한다고 주장했다. 반면에 신 제도학파는 마셜의 도구를 어느 정도 수용하였다. 제도학파에는 꽤나 여러 인물이 등장하므로 간략하게 중요한 내용만 요약해보도록 한다면 먼저 구제도학파의 토스타인 베블런을 시작으로 해야겠다. 


베블런은 약간 괴짜?같은 사람으로 학교에서 술을 먹자고 선동하질 않나 사람 고기를 먹으라고 하질 않나 어찌보면 약간 엽기적인 인물이였으나 경제학의 관심을 보였고 끝내 “유한계급론”을 출판하게 된다. 베블런은 유한계급론에서 기본적인 생존 본능, 자기 보호 본능이 충적된 이후 모방과 흉내본능이 발전되고 타인의 부러움을 받을수록, 존경을 받을수록 효용이 더 커진다고 하였다. 쉽게 말해서 우리가 보통 사치재라고 배우는, 가격이 올라갈수록 그 수요가 늘어나는 역발상적인 상황을 베블런 효과라고 표현한다. 베블런은 마셜이 고정요소의 개념을 통해 한계주의를 정리한 것에 대해 비웃었고 그 안에서 인간 내면의 취향이나 속물근성을 집중적으로 파헤쳤다. 베블런 효과는 분석하고 예측하는 차원의 경제학 측면으로 보면 조금은 안맞는 것 같긴 하지만, 인간의 삶과 선택을 분석한다는 의미로의 경제학에서는 꽤 잘 맞는 이론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실제로 베블런 효과는 우리 사회에 빈번하게 나타나고 있으며 겉으로 나온 옷 상표와 명품백으로 사람과 그 계급을 평가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 되어버렸다. 카드빚을 내서라도 명품백을 사다가 감옥에 간 여성들도 수두룩하다는게 웃기면서도 슬픈 현실이다. 최근에는 남녀 커플 사이에서도 진심으로 사랑해서가 아니라 겉 모습을 또, 그 계급을 기준으로 만나는 경우도 많고 너무 잘난 사람 만나서 잘난 척에 지쳐 헤어지는 경우도 주변에서 많이 봤다. 나는 이 현실이 너무 싫고 속상해서 이런 물질만능주의 세상을 미리 예견한 베블런이 괜히 밉다. 


다음은 광고의 유혹을 강조한 갤브레이스이다. 그는 천재라고는 하기에는 사알짝 부족한 감이 있는 인물이었던 것 같다. 갤브레이스는 마셜의 수요의 한계효용 이론이 인간의 필요에만 국한되고, 욕구에는 해당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즉 그는 기업이 고객은 왕이라는 구호를 외치며 수요를 기준으로 생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광고를 통해 인공적으로 소비 욕구를 형성하는 것이다. 따라서 자신의 필요와 한계효용을 고려한 독립적인 소비는 불가능하다고 하였다. 그는 더 나아가 이러한 광고를 아예 금지시켜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베블런와 갤브레이스는 나름 인간의 욕구와 욕망, 내면의 목소리(?)에 대해 고려한 점이 색달랐고 특히 개인의 취향과 욕구를 가장 우선시하는 현대 사회의 특성과 일정 부분 교합한다고 생각된다. 지금은 이론적인 모형에 맞지 않는 상황들이 빈번하게 벌어지고 그것이 당연해지고 있다. 당시에 베블런과 갤브레이스는 명쾌한 해답과 딱 떨어지는 모형을 구축하지 못해 조금 무시당했을지도 모르지만, 지금의 나로서는 그들의 색다른 발상에 박수를 치고 싶고, 현대 사회를 설명하는데 아주 적합하게 이용되고 있다고 말해주고 싶다. 


다음으로 신 제도학파를 알아보자면 그들은 마셜의 한계주의 도구를 수용하여 구 제도학파의 주장을 완전히 엎어버리며 등장하였다. 신 제도학파는 법률의 경제학이라고도 하며 경제학을 다양한 법률학에 적용하였는데 책에서 예시로 든 것은 과실, 재산, 범죄이다. 또 기업의 재무구조에 대해서도 경제학을 적용시킬 수 있다. 대표적인 인물로는 법 경제학의 대가인 코즈를 들 수 있는데 그는 재산권이 분명히 정립된다면 외부효과가 발생하지 않을 것이라고 하였다. 그러나 거래비용이 없고 완전경쟁시장이라는 전제가 비현실적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이 이론은 후생경제학 수업에서도 배웠는데 CO2배출량을 거래를 통해 감소시키는 목표를 갖는 기후변화협약이 이 이론을 수용한 것이라 하였다. 이 협약은 CO2를 더 적게 배출해내는 기업이나 나라에게 혜택을 주고 이를 판매하거나 거래할 수 있게끔 하였다. 다음으로 정치경제학, 범죄분야에서는 게리 베커가 유명한데 그는 모든 범죄에 경제학을 적용시켜 분석하였다. 저서에서도 밝혔듯이 제도학파로 인해 경제학의 범위가 상당히 확장되었고 또 그에 대한 시선이 상승하였음은 분명한 것 같다. 나 또한 한 때 좌우명이 기회비용을 고려하자였는데, 돈은 물론 시간의 쓰임에서도 기회비용을 생각하자는 의미였다. (1학년 때 조금 잘난척한답시고 해두었던 것임..^^) 즉, 경제학은 단지 돈, 이윤, 효용, 지대에 대해서만 적용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의 행동, 생각, 선택 그 자체에 적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경제학을 더 어렵고 힘들게 만드는 계기가 된 것이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만큼 경제적인 마인드, 생각이 사회를 분석하고 바라보는데 가장 중요한 요소임을 증명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한다. 또한 경제학을 적용한 정치,범죄,법 분야는 더욱 진화할 수 있을 것이며 이는 시간이 갈수록 복잡다난해지는 이 사회에 한발자국 더 다가가는데 도움이 될 거라 믿는다. 


9. 경제학계의 구세주, 케인스(1883-1946)


이제 슬슬 막바지로 와 드디어 케인즈에 도달하였다. 케인즈는 어떠한 말로 표현할 수 없을정도로 그냥 완벽하고 좋고 매력적이고 똑똑한 천재 경제학자였다. 이것은 모두가 인정하고 당대 최고의 학자들이 증명한 사실이다. 케인즈는 당시까지 지배하고 있던 고전학파에 자신만만한 도전장을 내밀며 등장했다. 그는 혹은 케인주의자는 2가지를 주장하는데 첫째, 민간 경제가 완전고용에 이르지 못할 수도 있다. 둘째, 정부지출은 경제를 자극시켜 불완전 고용의 틈을 메울 수 있다. 이다. 즉, 첫 번째 이야기는 고전학파가 전제조건으로 내세우는 완전 고용이 저절로 이루어지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의미이고, 두 번째 이야기는 정부가 경제를 활성화시킴으로써 그 불가능의 틈을 메꿀 수 있다는 의미 즉, 정부의 역할이 효과적이라는 의미이다. 케인즈는 일생동안 미국 정부의 자문 역할을 하며 조금 과장해서 세계의 경제를 조종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는 좋은 집안에서 유복하게 자랐고 소위 엄친아 그룹에 끼었으며 문화, 예술에 깊은 관심이 있었다. 한마디로 팔방미인이었다. 그는 마셜의 경제원론을 접하며 경제학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점차 자신만의 경제학 가치관을 정립하기 시작했다. 1차 세계대전과 세계 대 공황이라는 큰 사건을 겪으며 케인즈는 자문 역할을 해내었는데 특히 세계 대 공황이라는 절망적 상황에서 케인즈는 그동안의 고전학파 경제학자에 대해 멍청이들이라 표현하며 그들의 의견이 틀렸다는 반격에 나선다. 고전학파가 저축은 바로 투자로 이어진다고 했던 주장에 가계와 기업은 서로 다른 목표로 저축과 투자를 하기 때문에 그 두 가지가 바로 이어지지 않는다 하였다. 유연한 이자율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또 임금과 물가가 유연하다는 주장에 독점기업이 존재하기에 또 임금계약을 통해 임금이 책정되기에 임금과 물가가 유연하게 움직인다는 것은 억지라고 반격했다. 케인즈는 정부가 주체가 된 총수요를 중심으로 자신만의 모형을 제시했다. 케인즈는 건강한 경제를 위해서는 충분한 소비가 필요하다고 하며 승수이론을 통해 작은 변화로 큰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한계승수를 계산하여 그 효과를 예측할 수 있다고 하였고 이를 계산할 수 있는 간단한 공식까지 제안하였다. 당시 경제가 둔화된 때 케인즈의 주장을 받아들인 정책은 꽤나 쏠쏠한 효과를 보았고 케인즈는 만병통치약이 된 듯한 존경을 받으며 그 영광을 누리며 살았다. 10년 이상 동안 고전학파가 해결하지 못한 변비(?)같은 문제들을 나름의 방법으로 쏴악~한 것이다. 케인즈는 영웅이 되었고 단순히 인물이 아니라 현상 그 자체가 되었다. 


단순히 승수효과에 대해 공부했던 나지만 케인즈가 자신만만하게 저렇게 단순한 공식으로 주장을 펼쳤다는 점에서 놀랍다. 물론 그 단순 계산은 거의 안 맞는다고 배우긴 했다만 어쨋든 정부를 상대로 그러한 이론을 내세운 것 자체가 얼마나 당당하고 멋진가. 당시에 그나마 잘 맞아떨어졌으니 망정이지, 만약 계산과 전혀 다른 방향으로 흘러갔다면 그 조차도 당황했을지도 모른다. 또 케인즈는 소비가 미덕이라고 주장하였는데 이것은 경제 발전이 진행중이거나 조금 낮은 단계의 국가에서 더 많이 적용되는 것이고 유럽과 같은 선진국에서는 잘 맞지 않는다고 배웠다. 경제학은 시대에 따라 변화할 수 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당시의 이론을 지금의 시대에 무조건 적용해서는 안될 것 이다. 거시경제학을 공부할 때 케인즈학파와 통화주의자를 동시에 배웠는데 두 학파 사이에 상당히 다른 점이 많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위의 내용과 같은 맥락이지만, 단 하나만이 맞다고 볼 수 없다는 것이다. 가장 처음에 언급했듯 경제학은 유동적이고 case by case 성향이 강한 학문이기 때문에 단 하나의 이론에 승리의 트로피를 줄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다만 경제학도로서 우리는 그 두 가지 혹은 그 외의 이론들을 모두 잘 이해하여 가장 적합하고 알맞는 방법을 찾아내는 것이 공부하는 목적이라고 생각한다. 케인즈 모형은 단순하면서도 중요하게 자리 잡았으며 이를 이용한 여러가지 분석의 틀이 마련됐다는 점은 분명한 것 같다. 다음 chapter에서 두 학파간의 논쟁이 이어질 예정이니 여기서 마무리하겠다. 


 



10. 케인스에 반기를 든 통화주의의 창시자, 밀턴 프리드먼


통화주의자들은 당시 대세였던 케인즈에 반격의 기를 든 학파가 나타났는데, 1970년, 1980년에 발생한 오일쇼크와 스태그플레이션에 대해 케인즈 학파가 이렇다할 대책을 세우지 못한 것을 계기로 등장하였다. 그들은 국가경제라는 자동차의 엑셀러레이터와 브레이크는 정부지출과 세금과 같은 재정정책이 아니고 또, 정부는 대개 형편없는 운전자이므로 믿을 수 없다고 하였다. 그들은 엑셀러레이터에는 통화량 증가, 브레이크에는 통화량 감소라고 쓰여있고 이 운전대는 연방준비은행이 잡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즉 그들은 “통화”를 중심으로 경제학을 분석하였고 통화 금융정책의 효과를 강조했다. 이때 통화주의자들이 강조한 것이 바로 Velocity, 화폐의 유통속도이다. 이 지표는 쉽게 말하면 돈이 은행을 몇번이나 들어갔다가 나왔나, 돈이 얼만큼 빠르게 돌아다니고 있는가, 라고 할 수 있겠다. 통화주의자들은 이 지표를 통해 정부(즉, 중앙은행)가 직접 지출을 통해 수요를 움직이는 것보다 통화금융정책을 펼치는 것이 더욱 효과적이라고 주장하였다. 케인즈 학파와 통화주의자들은 이 유통속도에 대한 견해의 차이로 자신들의 의견이 달라진 것이다. 통화주의자는 V가 일정하기 때문에 중앙은행이 통화량을 조절한다면 그만큼 물가가 변화할 수 있다고 해석하였다. 케인즈학파는 V가 항상 일정하지 않고, 투기 목적으로 화폐수요를 할 것이라고 반격하였다. 통화주의자 또한 구축효과를 근거로 케인즈의 승수이론은 효과가 없다며 무시해버렸다. 아무튼 두 학파는 돈의 출처부터 시작해서 돈의 가치, 동기, 유통속도, 통화정책 효과, 정부지출 효과 등등등으로 계속해서 싸움을 이어가고 있다. 이 저서에서 결론 지은 것은 바로 절충이다. 케인즈로 인해 우리 모두 케인지안이 되었고 통화주의자로 인해 우리 모두 통화주의자가 되었으며 혼란한 세상 덕분에 우리는 모두 절충주의가 되어버렸다고.. 경제학을 배우지 않은 사람이 이 책을 읽었을 때 “아 뭐야! 그래서 어쩌라는거야”라고 말할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래서 다시 한번 강조한다. 이 세상은 너무나 복잡하고 경제학은 유동적인 학문이기에 단 하나의 해법을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11.정치는 곧 비즈니스라고 외친 공공선택학파의 창시자, 제임스 뷰캐넌


이전 제도학파에 관한 chapter에서 경제학을 문화, 사회 풍토, 법, 정치 등으로 확장시킨 것처럼 공공선택학파는 경제학을 통해 정치를 분석한 이론이다. 과거의 경제학은 정치와 결합되어 존속된 경우가 많았는데 정치, 정책에 대한 결정을 할 때 나라의 경제를 많이 고려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이후 경제학은 독립된 학문으로 발전하였고 유명한 경제학자들은 정치라는 요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제임스 뷰캐넌은 소외된 정치라는 요소를 중심으로 사회와 경제를 분석하였다. 


그는 주류 경제학파에게는 왕따를 당하였고 가난하게 살았지만 1986년 노벨 경제학상을 차지하는 영광을 누렸다. 뷰캐넌에 의하면 정부 관리들도 기업들처럼 경제학적 목적을 가지고 정치를 행한다는 것이다. 즉, 자신이 추구하는 가치, power를 위해 이기적으로 행동한다는 것이다. 저자는 수학적 계산을 통해 그들이 왜 똘똘 뭉친 소수집단의 편을 들어주는지 설명한다. 정치인들은 사람들이 좋아하는 것을 주려고 애써 노력한다. 미래에 재정적자가 불 보듯 뻔한데도 불구하고 일단 사람들의 입맛을 맞추려 애쓴다. 그래야 자신의 power가 유지되기 때문이다. 대중들은 이를 알면서도 하나하나 따지려 들지 않는다. 이를 합리적 무시라고 일컫는다. 이번 장에서는 공공선택학파를 이끄는 학자들이 여러 소개되는데 그들은 일관적으로 정부 관료를 믿지 않고 오히려 쥐로 취급을 하기도 한다. 지금까지의 경제학은 독점이나 시장 실패의 경우 정부가 중재하여 이를 해결해야한다고 말해왔다. 그러나 공공선택학자들은 되묻는다. power를 목적으로 정치를 행하는 그들을 과연 믿을 수 있을까? 특히 이 이론은 정부지출을 강력히 주장했던 케인즈에게 비판의 근거가 되기도 한다. 


제 11장을 읽으며 최근 치러진 서울시 시장선거가 많이 떠올랐다. 전 시장의 하차로 치러진 이번 선거는 여권을 대표하는 나경원 대표와 범야권을 대표하는 박원순 대표의 라이벌 구도로 진행되었다. (물론 기호2번의 다른 후보가 존재하기는 했지만) 우리는 서울시에 살고 있고 제2의 대한민국인 서울이 발전되고 풍요로워지기를 바란다. 치오르는 물가와 집세, 기름값 등 안 좋은 뉴스만 가득한 요즘 누군가가 우리를 위한 획기적인 정책을 계획해주기를 바랬다. 누가 가장 정치적으로 적합한 인물일까를 고려해보기도 전에 두 사람은 공공선택학자의 말처럼 power에만 신경 쓰는 것처럼 보였다. 두 후보는 네거티브 선거에 주력하며 서로를 비판하는 행위에만 집중한 듯 했고 이러한 부분은 나는 물론 많은 사람들에게 안 좋은 이미지를 남기게 되었다. 많은 제도학파와 같이 비주류 경제학자들이 예측한 부분들이 현실에 들어 상당부분 맞아가는 것이 무언가 좋지만은 않은 것 같다. 선택은 점점 인간 내면의 속물근성, 나쁜 심성의 영향을 받고 있는 것이다. 나 또한 정치가들이 경제적으로 행동한다는 부분에 상당히 공감한다. 특히나 많은 정치가들의 비리와 뇌물사건 등이 드러나면서 정치계에 대한 국민들의 신뢰는 점점 바닥으로 향하고 있다. 정치란 것이 무엇일까, 공공의 목적으로 나라를 부흥시키고 국민을 보호하는 것이 아닌가? 하다못해 노인센터에서 공익근무하는 내 친구도 공무원들의 사사로운 비리가 끝이 없다고 한다. 나랏돈으로 술 먹고 샤워 실 개선하고 어르신들의 반찬을 자기들이 먼저 먹고 있다고 한다. 선거로서 권리를 표현하라고는 하지만 그들 하나하나를 개선시킬 순 없지 않은가. 답답한 현실이다. 


 



12. 합리적 기대와 불확실성이 동시에 지배하는 기상천외의 세계


제 12장은 합리적 기대이론을 바탕으로 주류 경제학을 반격한 이야기로 구성되어 있다. 합리적 기대이론이란 사람들이 한 번은 속아도 두 번은 안 속는다는 이야기다. 즉 과거에 있었던 일들을 알고 있고, 또 최신 정보들을 습득함으로써 현재, 나아가 미래를 예측할 수 있다는 뜻이다. 이 이론은 증권시장에서 가장 잘 적용될 수 있는데 사람들이 합리적 기대를 통해 주가가 오를 것인지 내려갈 것인지 예측 가능하기 때문에 그 주가는 오를 가능성이 있는데도 불구하고 (혹은 반대) 오르지 않게 되는 것이다. 따라서 그들은 정부 정책은 충분히 예상가능 하기에는 효과가 없다고 주장하며 정부 정책이든 뭐든 갑작스럽게 발생해야 효과가 있다고 주장한다.


  

느낀점


  이 책은 많은 사람들이 추천해온 책이었다. 하지만 이제야 읽게 된 건 어떻게 보면 나의 게으름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한다. 개인적으로 폴 크루그먼 교수를 좋아해서 그의 모든 책을 다 읽어보았는데 지금 보면 이 책을 먼저 읽고 읽었다면 더 이해도가 높지 않았을까 생각이 든다. 밀턴 프리드먼에 대한 이야기라던가 케인즈 학파에 대한 내용들은 그땐 잘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내가 들어온 지식인들을 더 깊게 알 수 있었다는 점에서 보람을 느꼈고 또 그들이 왜 그런 이론들을 펼쳤는지에 대한 배경지식을 충분히 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이번 과제 또한 스스로 경제학 역사를 공부해보면서 이공계 학생이지만 기본적으로 가져야 될 경제학에 대한 소양과 가치관의 정립, 고민, 고찰을 해보라는 의도를 가지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경제학이 단순히 유동적이고 어렵고 난해한 학문으로만 인식하고 있다가 여러 가지 이야기들과 이론들, 논리들을 접하면서 경제학은 정말 무궁무진한 학문이고 또 그 안에서 나름의 재미와 쾌감이 있는 학문임을 깨달았다. 개인적으로 경제학을 주식 시장을 이해하는 통로정도로만 생각해왔는데 이렇게 세상을 좁게 보고 있었다는 내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게 된 시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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